[2022-1] 매우 주관적인 학부 연구생 경험과 후기

(Update: 2023-08-02) 시간이 지나 대학원에 입학했네요. 대학원 진학에 대한 생각을 써 보았습니다.

Title: 대학원에 가는 이유 (부제: 시스템 벗어나기)

Link: https://scieneer.kr/50 

#15 대학원에 가는 이유 (부제: 시스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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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학부 연구생 경험은 생각했던 것만큼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배울 점은 있었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나, 그런 경험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된다고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었다.

 

학부 연구생에 관하여 (우리 학교 내가 경험한 연구실 기준 / 학교마다 많이 다를 듯)

1. 출근 : 월화수목금 11 - 5~6 정도 / 연구실마다 다름 / 내가 경험한 두 번째 연구실은 출퇴근 시간 자유
2. 하는 일 : 연구실마다 다른데 잡일은 그다지 없었고, 과제에 맞춰서 개별 연구
3. 월급 : 거의 50 / 과제 많거나 활성화되는 연구실인 경우, 오래 할수록 임금 올라감 / 학부 연구생 임금 최대는 100
4. 되는 방법 : 연구실 홈페이지 공고 보고 연락드리기 / 교수님이 직접 구함 / 학교차원 학부 연구생 프로그램 등
5. 노예가 되는가 ? : 딱히 아닌 듯한데, 사람 적은 연구실일 경우 잡일 많이 할 수도...
6. 스펙이 되는가 ? : 본인이 '오래' '열심히' 해서 논문에 참여한다면, 아니어도 어떤 연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7. 힘들고 시간 많이 뺏김, 학기 중에는 교수님도 바쁜 거 아시긴 하는데,, 그래도 수업 듣고 남는 시간에 일은 해야,,
8. 그렇다고 비추하는것은 아니고, 빡세게 해보고 싶은 사람에겐 굉장히 좋음, 하지만 임금이 적을 뿐 ㅜ

만약 학부연구생이 하고 싶다면

1. 사람이 적은 곳보단 적당히 많은 곳이 낫다.
2. 일을 '적당히'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공부 겸 하는 거지만 너무 힘들게 할 필요 없다.
3. 한 번쯤 해보는것은 경험에 좋다.
4. 월급이 궁금하다면 교수님께 살짝 여쭤보라.
5. 만약 대학원 진학 예정인데, 학부 연구생 경험이 좋지 않았더라도 좌절하지 마라. 모든 것은 연구실 by 연구실이기 때문에, 그냥 그 연구실이 본인과 안 맞았던 거다.

 

아래는 나의 생생한 학부 연구생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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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학부 연구생 : 물리학과

2-2에 들었던 물리학과 4대 전공 중 하나인 "전자기학"이 종강하고, 교수님께서 전자기학 톡방에 학부 연구생을 모집한다는 글을 쓰셨다. (보통은 연구실 홈페이지에 모집공고를 띄워 놓는데, 교수님께서 연세도 있으시고 자연대학은 인기가 시들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하시는 듯하다.)

 

그때 마침, 컴퓨터공학과 학부 연구생 하나를 지원한 상태였는데 뭔지 모를 물리학에 대한 경외심(?) 때문인지 두 연구실을 두고 엄청난 고민을 했다.

 

학부 연구생이나 대학원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게 없는지라 어떤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

 

그래서 Feel 대로 물리학과 연구실을 선택, 나의 첫 번째 학부 연구생 생활을 시작하였다.

 

연구실은 조촐했다. 학생들이 일할 수 있는 책상 4개가 일렬로 있었고 바로 옆방엔 실험실이 있었다. 그리고 몇 층 올라가서 또 하나의 실험실이 있는 구조였다.

 

그때 진행되던 연구는 반도체 관련하여 여러 소자들을 실리콘 웨이퍼에 wrapping 하고 자기장 속에서 빛의 굴절률 등을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사실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난다. ㅋㅋ ㅜ)

 

모든 게 낯설었던 첫 순간에 교수님께서는 논문을 주시며 바로 다음 주에 논문 리뷰(paper review) 발표할 것을 주문하셨고,,,  나는 뭔지도 모르는 논문을 그나마 이해할 때까지 수십 번은 읽은 뒤 어떻게 ppt로 잘 정리해서 발표를 했다. 그 뒤로도 관련 논문을 읽으면 발표하였고, 계속 실험하고 교수님께 보고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근데 이 실험이라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우리가 했던 실험은 어닐링 방식인데 (어닐링이라는 것은 물체를 천천히 고열로 가열한 뒤에 다시 천천히 식히면서 물체의 구조가 바뀌는 것을 의미) 소자를 반복해서 wrapping 하고 어닐링 하고 다시 wrapping 하고 어닐링 하고... 이렇게 하면 몇 시간은 훌쩍 지나기 일쑤였다.

 

내가 물리학과 학부 연구생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아무나 데리고 와서 시켜도 할 수 있는 일이라 느껴졌다. 관련 물리 지식을 배운다거나, 수식을 푼다거나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추운 겨울에 추운 실험실에서 오들오들 떨며 단순 막일을 하고 있자니...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러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좋은 결과도 나오고, 논문도 나오는 것이지만, 그건 내가 하고자 하는 main work 일 때에 이야기이고,,, 11 to 6 를 매일 반복하며 최저시급도 안 되는 50만 원을 그 겨울에 그러한 실험을 하며 받는 임금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하기가 싫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ASAP. 빨리 교수님께 말씀드리는 게 좋다. (이건 내가 찾아보았을 때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다!) 내가 다른 무언가와 맞지 않는 것은 대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안 맞는 건 안 맞는 것일 뿐. 맞는 사람이 대체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첫 번째 학부 연구생 경험은 한 달간의 경험으로 끝이 났다. 썩 재미있는 경험은 아니었지만 실험도 해보고 논문도 읽어보고 다양한 것을 경험해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가기 전에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듯이 그냥 이렇게 시도해보고 확인하는 것이 과학의 발전인 것인데, 그러한 과학과 실험에 대한 나의 이해와 관심이 더 많았다면 좋았겠지만, 스스로 그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아쉽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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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학부 연구생 : 컴퓨터공학과

물리학과 학부 연구생을 경험한 후 나는 대학원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진로 차원에서의 고민도 맞지만, 학부 연구생을 한번 더 해보고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 존재하는 컴퓨터공학/정보통신공학과 연구실을 모조리 살펴보았고 

1. 학부 연구생을 모집하고
2. 내가 관심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실 목록을 뽑아낸 뒤,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기억이 맞다면, 한 교수님께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학부생들에게'라고 써놓은 장문의 글을 읽게 되었고 그 글에 매료되어 교수님께 바로 메일을 보냈다.

 

이번 연구실은 이전 연구실에 비해서는 규모가 굉장히 컸다. 컴퓨터공학이 핫해서인지 인원도 많았고(10명 이상), 장비 또한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이전 연구실과는 다르게 논문 리뷰는 따로 하지 않았고, 주 1회 진행하는 교수님과의 미팅이 있었다. 짧으면 5분 길면 1시간,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보고하고 토론하는 식이었다. 나는 별 다른 진행사항이 없었기에 연구실에 들어가고 한 달이나 지나서야 교수님과 미팅을 시작했다.

 

처음에 학부 연구생 생활은 완전 맘에 들었다. 그동안 공부하고자 했지만 계속 미뤄두었던 '리눅스'를 만져야만 했기에 리눅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고, 내가 맡은 일은 결국 프로그래밍(=개발) 해야 했기 때문에 논문을 읽고서 하루에 몇 시간씩 코딩만 하는 게 재미있기도 했다. 주변에 프로그래밍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연구실 출근하면 옆사람 모두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으니 왠지 모를 소속감이 들기도 했다.

 

연구실 사람들과 교수님은 매우 좋은 사람들이었고, 연구실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눈치 주는 사람도 없었고 날 힘들게 하는 사람도 없었다. 워크숍 명목으로 2박 3일 제주도에 휴가 겸 다녀오기도 했고, 좋았던 기억밖에 없다.

 

나도 내가 맡은 일들을 일사천리로 해결하며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무언가 일을 빠르게 잘 처리하는 건,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남들이 보지 않는 시간에 더욱 노력함을 의미한다.)

 

나는 내가 관심 있는 사항에 관하여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고, 문제 해결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맡은 일을 코드로 구현해내고, 문제가 생긴 부분들은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잘 해냈다.

 

(그리고 나에겐 딱히 휴식이라는 개념이 없다. 나는 공부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일하는 것도(물론 내가 좋아하는 일) 좋아한다. 남들에겐 일처럼 보이는 것들이 내게는 놀이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에, '일' 하는 것이 내게는 휴식과도 같다. 그러다 보니 쉼 없이 폭주하는 폭주기관차 같기도 한데, 아직 내가 미숙하여 control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나에게는 빠르게 번아웃(burn-out) 시기가 찾아온다.)

 

4월에 학부 연구생을 시작하고서, 내가 맡은 연구에 대한 논문을 이해하고 구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금방 주요 로직과 아이디어까지 코딩하고 교수님과 토론하며 나온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적용하고 실험 데이터를 뽑고 있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업무를 끝내고 나니 더 큰 업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게 여태 해왔던 것보다 더 중요하고 real 한 task 일지 모르지만, 쉼 없이 일하는 성격상 빠르게 빠르게 일을 해결하며 왔고 이제 숨좀 돌리려 하는 순간 눈앞에 거대한 업무가 찾아오니 그게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만약 같이 일하는 co-worker가 있었으면 괜찮았겠지만, 그건 내가 정하는 건 아니었고, 처음부터 이 연구를 혼자 시작했던 나는 그 순간부터 조금씩 지치기 시작하였다.

 

여태는 하나의 동작 기술들을 구현해내고 실험하는 것이었다면, 그때부터 해야 할 일은 전체적인 system을 설계하고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 사용했던 tool 은 nvidia cuda를 이용한 병렬 프로그래밍이었는데, 난 사실 이와 관련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연구실 들어와서 다 처음 경험해본 것들이어서, 그 system을 구현하고자 하니 너무나도 막막하였다.

 

앞서 말했듯 같이 일할 사람이 있더라면 괜찮았겠지만, 혼자 해야만 했고, 앞으로 구현해야 할 것을 먼저 해왔던 사람도 없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사용 가능한 메모리를 동적으로 할당하고, 연산 속도를 gpu를 이용하여 가속화하기 위해 data를 gpu로 tile 모양으로 보내고 등... 이해는 다 했지만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아무런 발전이 없는 상태로 교수님과의 미팅에 참석하니 딱히 할 말도 없었고, 더욱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재미도 식어갔고, 일도 귀찮아졌다. 그 와중에 교수님께서 나에게 이 일을 금방 끝내고 논문도 쓰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다고 하셨다. 뭔가 내 실력에 대한 믿음을 주시는 것 같아서 엄청 감사하기도 했는데, 어차피 그건 나중일이고 나는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답답했다.

 

두 번째 학부 연구생 경험은 그렇게 점차 식어가며 마무리되어갔다. 난 보상(=돈)은 그리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았는데 여러 경험을 통해 보상도 굉장히 중요한 체계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것만으로 큰 만족감을 느낄 줄 알았는데, 최저임금도 못 받고 열심히 일 하려고 하니 몇 개월간은 그렇게 했어도 더 지속할만한 동기가 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의의는 있었다. 첫 번째 연구실에서 큰 배움은 없었지만, 두 번째 연구실에서의 경험은 내게 큰 배움이 되었다. 여러 가지 깨달음 ( 연구실이 나의 것이 아니므로 너무 빡세게 할 필요 없다는 것, 임금은 동기로써 중요하다는 것 등)을 얻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