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모델의 학습방법 중 하나에는 '지도 학습'이라는 방법이 있다. '지도 학습'은 인공지능 모델에게 문제와 정답의 데이터만을 주는 방식인데, 이때 인공지능 모델은 문제와 정답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간다. 이를 학습이라 한다.

 

---

 

2015년 겨울, 학교는 방학을 했지만 방학 후 2주간 진행되는 보충수업 때문에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등교를 했다. 이때 진행되는 수업은 점수에 반영되지 않아서 열심히 보다는 여유를 부리며 수업을 듣곤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국어시간이었다. 그것이 고전시였는지 현대시였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때 나는 시에 대한 해석을 배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석하는 방법이 아니라, 누군가가 해석해놓은 결과를 배우고, 아니 아무런 저항없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득 내 머릿속엔 거대한 허리케인의 시발점이 되는 듯한 스파크가 일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것, 배움이란 무엇인가?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내 머릿속엔 그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 해 나는 공부가 하고싶어 전학을 갔고, 일반고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 와중에도 열심히 공부하려 노력하며 결과적으론 좋은 성적을 따냈기 때문이다.

2학년이 되어서 무엇을 공부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가고싶은 대학과 과를 정해놓고 그 결과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열심히 할 일만 남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해야할 그거, 공부란 무엇인지가 내 머릿속을 잠식해버린 것이었다.

 

---

 

나 스스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내가 잘하는 search를 많이 했었다. 그때 당시엔 '공신'(=공부를 신나게) 강성태의 동영상과 책, 공신 멘토단의 공부법을 참고해가며 공부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지만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배울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머릿속에서 토론하는 식의 생각을 많이 하였다.

 

쉽게 말하면 이런식이다. 어떤 주장을 내세운 뒤 정말 그것이 옳은지를 여러방면에서 객관적으로 스스로 생각해보는 식이다. 맞다면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가 보고 아니라면, 다른 주장을 생각해보는 것.

 

결론은 쉽사리 나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에게 공부란 결과 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시를 예로들자면, 정해진 답은 없기 때문에 누구의 해석이든 옳다는 것이었다. 정답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생각과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쉬운 길이 아니라 뜻이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에 가는 순간, 나의 생각은 일그러졌다. 대게 학교에서의 배움의 과정은 일방적이고 획일적일 뿐 아니라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통한 역사적 의의나 가치보단 어떻게 시험 문제에 나오는지만 관심있어 할 뿐었다.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결과만 가르칠 뿐이었다.

 

나는 그런 교육을 혐오했다. 

 

---

 

그 뒤로 나는 사춘기온 비행 청소년 처럼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공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는 채 의문을 품으며 공부를 하려하니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할려면 할 수야 있었지만, 맹목적인 공부는 할 수가 없었다. 모든것을 입다문채 받아들이고 대학에 가면 나중에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는 말엔 넘어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어른들의 말과 행동이 예시 답안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육 방식은 과거 일제시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을 포함한 많은 부분이 그렇게 넘어왔으니 말이다. 또한,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강력한 민족성(=문화)을 바탕으로 하는데, 제조업 기반으로 한강의 기적은 이룬 대한민국에게는 발 빠르게 잘 나가는 산업을 베끼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즉 과거부터 대한민국의 산업 자체가 스스로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산업에 맞춰서 교육방식을 정하니 당연히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 보다 이미 알려진 내용들을 습득하게 함이 용이함은 틀림없다.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을 시작하였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대학 입시의 70%에 달하는 수시를 버렸다. 성적이 낮아서? 아니, 그런 교육을 통해 평가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에게 쉬운길은 당연히 아니었다. 단지 뜻이 있는 길이었다.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일단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40년 전이었더라면 나도 데모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차이점은, 오늘날엔 누구나 옳은 생각을 할 수는 있더라도 결국엔 쉬운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