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8 3D

분발

연말이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번째 글이라니. 달에 2편 씩도 안썼었나?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근래 계속 고민하는 것을 기록하다보니 글 쓰는 텀이 길어지나 보다. 앞으로는 좀 생각을 더 잘 정리하는 법을 익혀야 겠다. 글을 좀 더 빨리 쓸 수 있도록.

 

당신의 시각은 입체적인가

근래 생각은 그렇다. 우린 너무 단편적인 삶을 산다는 것.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멍청해졌을까? 나를 포함해서. SNS는 인생의 낭비라던 퍼거슨 옹의 말씀은 틀린 구석이 없다. 

 

예전에는 뉴스가 설명이라도 해줬지 요즘에는 숏폼이 대세라서 고작 15~30초 정도의 영상을보고 다양한 썰전이 오간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사건을 인식하는데 앞 뒤 맥락을 다 짜르고 고작 그 20초 남짓으로 판단한다. 이게 위험한 이유는 비단 SNS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고 변하기 때문에.

 

학교 생활을 해봐도 그렇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봐도 그렇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사슬을 가진 이가 드물다. 그런 사람들은 멋이 난다. 흙 속의 진주 처럼. 사막 속에 바늘 처럼. 사람을 만날때도 그 사람의 첫 인상이 중요하다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대충 30이라고 치면, 그 사람의 30년을 내가 만난 30초로 어떻게 퉁칠 수 있을까. 나 하나만 봐도 사연이 많은 사람이다. 나를 오래 알고 지내도 나라는 사람을 다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판단을 보류한다.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하면서.

 

시간 차원

사실 시간 차원을 합치면 4차원이다. 3차원이 아니라. 물리를 공부하신 분들은 알 것이다. 다른 분들은 이해 못해도 괜찮다. 3차원 이라고 한 이유는, 그냥 우리가 바라보는 단편적(2D)인 세상 속에(물리적인게 아님) 시간을 누적해서 바라보는 힘을 기르자는 거다. 그렇게 좀 더 의미적인 부분까지 바라보자는 것.

 

내가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연세대 산업공학과 임춘성 교수님의 "역량" 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단락이 나온다. 그 사람의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을 알 수 있다고. 단순히 책의 질이나 양 따위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책들이 어떻게 구분되고 정리됐는지를 보면 서가 주인의 지적 세계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보는 책장이 단편이라고 치면, 3D로 본다는 것은 위와 같다. 그 속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저자는 책장의 책들이 어떻게 구분되고 정리 되었는지를 통해 그 사람이 책을 어떻게 읽었고, 어떻게 구분하였고, 어떤 책들은 공통점이 있고 어떤 책들은 다르고 하는 것들을 통해 그 사람의 지적인 부분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쓰고 나니까 약간 탐정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탐정. 디테일. 디테일이 참으로 중요한 세상이다. 근데 전반적으로(나를 포함해) 디테일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사회적인 이슈이기도 한 것 같고. 다들 뭔가 골똘히 생각해볼 기회 자체가 많이 없으니까. 그래서 대학원을 가는게 의미가 있을 지도.

 

누가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원에 가서 얻는 이득 중 하나는, 어떤 한 주제에 대해 그렇게 깊이 있게 고민하고 탐구해볼 "기회" 자체가 인생에 몇 없다는 데 있었다고 했다. 공감한다.

 

기승전 대학원으로 글이 종결되길 바라진 않았지만, 쓰다보니 그렇게 됐다. 여담으로, 대학원 한 학기를 보낸 사람의 느낀점을 말하자면 대학원은 "자기와의 싸움" 같다. 그 싸움의 주제도 다양하지만,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